싱가포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중 하나는, 예비 장인께서 보시는 TV 프로그램의 80%이상이 한국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말드라마는 물론 대다수의 예능, 심지어 사극까지 방영해주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사극이잖아요. 어느정도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역사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는 힘들텐데 말입니다.
다른 아시아 - 특히 동남아시아 - 국가들 역시 한국 프로그램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광수 씨가 아시아 프린스라는 말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이광수씨의 인지도는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제 여자친구가 한국을 방문할때마다 꼭 듣는 부탁이 '이광수씨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사다달라' 이니까요. 그중에서도 싱가포르의 한국 TV 프로그램 의존성은 타국에 비해 훨씬 더 높다고 봅니다.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큰 정도의 도시 국가고, 때문에 방송국 - 방송컨텐츠에 한계가 분명합니다. 현지 프로그램의 깊이가 과장해서 '지역방송'수준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방송천국인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크게 자리를 잡은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체 컨텐츠가 부족하니까요.
신기한 것은 다른나라의 방송 프로그램도 굉장히 많을텐데, 절대다수가 한국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옆나라 일본이나 미드, 영드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도 싱가포르 방송에서는 꾸준히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더빙, 자막버전을 동시 방영하기도 합니다. 인기 절정인 런닝맨을 더빙버전으로 보다보면 꽤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한국문화의 반 강제적인 접촉은 한국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이해를 수반합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자연스럽게 한국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요. 덕분에 일본어와 더불어 한국어는 싱가포르 대학생들이 관심있게 학습하는 언어중에 하나입니다. 제 여자친구의 친구들만 해도 간단한 한국어 인사정도는 하는 정도니까요.
그런데 드라마와 쇼 위주로 한국 문화를 접하다 보니, 한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특히 인기가 많은 류는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 형식의 장편 드라마인데, 여기서 반드시 나오는 부분이 있죠? 바로 고부갈등입니다. 한복을 곱게 입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빨간 바구니에 김치를 수십포기 담그는 새댁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는 거의 항상 등장하는 소재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시선은 사뭇 진지합니다. 저희 예비 장인께서도 가끔씩 저희 여자친구에게 '너는 결혼뒤에 한복을 입고 살며 김치를 담가야 할꺼야' 라고 말씀하시니까요.
또 수많은 불륜과 이혼, 기상천외한 설정으로 '막장드라마'로 알려져있는 작품들이 점차 방영됨에 따라, 한국인에 대한 기이한 편견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참 웃지 못할 상황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을 접할때마다 예비 장인 장모님의 걱정은 하늘을 찌르고, 여자친구는 저에게 수십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죠. 이게 어쩔때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서 차라리 싱가포르에서 한국 방송을 방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정도니까요.
이렇듯 싱가포르 사람들에게는 한국 방송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편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방송을 떠나서 그들이 진짜 한국인을 만났을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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