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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존윅 3 리뷰] 존윅은 한시간 동안 대체 무슨생각을 했나. : 스포 有


[주의 : 강한 스포일러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








전편 존윅 2 : 리로디드에서 상대들을 씹압살 한 후, 존윅은 윈스턴에게 간지터지게 말한다.

" 윈스턴, 전해줘요. 누굴 보내든, 누가 오든 내가 다 죽여버릴거라고요. " 
" 물론, 자네는 그럴 것이지 " 

윈스턴의 예상했다는 미소는 나로 하여금 존윅이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모든 적을 처절하고 말쑥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탐욕스러운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킬러집단의 대상이 된 킬러는 이전에도 있었다.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오는 족족 다 죽인 끝에  살아남았다. (손익분기가 안맞아서 킬러집단이 그만둔건지, 아님 진짜 다 죽여버린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부부의 존재가 존윅 3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진 못한다. 비슷한 스토리를 존윅이 진행하는 것만으로 영화는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그래, 내가 기다린 것은 감독이 말한 '존윅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서사따위가 아닌, 존윅의 사정없는 학살과 미어 터지는 간지였던 것이다.



애시당초 존윅 시리즈의 서사는 좋게 말하자면 깔끔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내용이 없었다. 존윅이 화났고, 죽인다. 존윅이 화났고, 정말 멋지고 갈끔하고 잔인하게 죽인다.
근데 그 죽이는 장면이 정말 빠르고 잔인하고 멋지다. 적은 양의 서사는 오히려 영화의 그러한 점을 부각시켜, 더 멋지게 만들었다. 잘지은 밥과 잘 구운 베이컨만으로 구성된 깔끔하고 원초적인 밥상이었다.

존윅 3의 초반 서사는 여전히 해당 공식을 철저히 따른다. 풀어헤쳐버린 섹시함을 펑펑 풍기면서 킬러들을 유혹해서, 1시간이 너무 길도록 안달이 나게 만들어 버리고, 그 중에 새치기한 놈을 뇌섹하게 죽이고 나서는 1시간을 채운다.

그리고 나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엄습해버린다. 애초에 왜 이 킬러아저씨는 총 몇자루 제대로 안챙기고 돌아다니나 했는데, 존윅은 냉병기로만 (젤 앞의 리볼버 한명은 빼고) 중국 암살자들을 죽여댄다. 1시간을 기다린건 너네 잡놈들이 아니라 존윅이야! 영화관은 순식간에 환호와 탄식으로 가득 찬다. 총이었다면 낭만적이지 못했을 원초적인 쾌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냉병기가 없는데로 갔더니 이젠 말로 사람을 죽여댄다. 넘치는 킬러의 페로몬에 정신을 못차리는 찰나,

영화는 갑자기 서사를 수줍게 내밀기 시작한다. 동북아를 둘러싼 강국들 중국, 러시아, 일본 집단을 내밀더니 중동으로 넘어간다. 물론 그 와중에 피는 여전히 튄다. 근데 에피타이저가 너무 맛있어서 두번째 코스요리가 성에 차지 않는다. 우리는 존윅을 기대했는데, 다른 개줌마와 초밥집이 갑자기 너무 날뛴다. 그래, 메인을 위해 입가심이라고 생각하자. 수줍은 서사는 맛있는 메인을 위한 허례의식이라 생각하면 된다. 자신을 달랜다.

무릎을 꿇든, 개나소나 횡단하는 사막을 횡단하든 나는 내켜하지 않는다. 존윅이니까. 다른 영화라면 의문을 갖겠지만 존윅은 사막을 횡단해서 그새끼를 죽일꺼야. 그래, 드디어 존윅이 머리를 이렇게 따려는구나 한 순간,

나를 배신한다. 순식간에 나를 난도질 한다. 영화는 가장 평온하지만, 나는 혼란에 빠진다.

' 다 죽여버리겠다며? '

불과 한시간 전에 존윅이 윈스턴에게 그렇게 간지터지게 말했는데, 다 죽여버리겠다고.
근데 고작 그거 죽여버리고는 벌써 지쳤나? 그는 야부리를 털어 목숨을 구걸하고는, 고향으로 가는 중립선에 오른다. 나는 참지 못하고 외친다

'그럼 피닉스는? 당신이 학살한 수백만명은?! ' 

수치를 느낀 것이었을까, 컨티넨탈 호텔로 돌아서는 존윅은 기어코 손바닥을 뒤집는다. 잃어버린 약지는 대체 무슨 소용이야 시발, 암살검도 못쓰는데. 서사를 수줍게 내민 이유가 이토록 수치스러웠다면, 그냥 그 서사를 거두어 달라고 요청했어야.

가당찮게도 그 때 메인 요리가 등장한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존윅이 고전할 만한 수학여행 버스 두대가 들어오더니, 요리는 없고 냄새만 풍긴다. 맛있을 거 같으면서 별로 아닌거 같은 그런 음식의 냄새뿐이다. 익숙한 게임의 냄새. 맨하탄에서 폐지를 주으러 다닐 냄새.

존윅은 탄창 하나를 거의 다 써서야 한마리를 잡는다. 못맞추는 것도 아니다. 다 맞추는데, 죽지 않는다. 존윅은 죽을리가 없고, 그리고 쟤는 안죽는다. 2편에서 7개의 탄환으로 시원하게 7명을 죽이던 속도감은 없어지고 영화는 마루이 BB탄 권총을 쓰는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변화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영화를 거역하지만, 존윅은 꾸역꾸역 뻑뻑한 고기를 썰어 먹고는 시큰둥하게 메인빌런(제로)을 바라본다. 이미 쉴대로 쉬어버린 메인빌런..


존윅 2가 1을 넘어섰던 이유는 비단 일취월장한 영상미 뿐만 아니라 빈공간을 채운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 덕분이었다. 하이테이블도 무시하지 못하는 윈스턴의 힘과 지하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바우러리 킹, 그리고 무엇보다도, KOF 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소리없는, 하지만 깜찍하게 윙크 하는 빌런 그녀 아레스.




이 장면에서 존윅 3는 자신의 전작을 너무 의식한 티를 강하게 낸다. 전작에서 특출남을 보여줬던 현대미술관과 캐릭터 있는 빌런을 따라 잡기 위해 과하게 욕심을 부린다. 그 결과 메인 빌런은 캐릭터를 너무 독창적으로 잡은 친목 빌런이 되어버렸고, 굳이 싸움의 장소를 시각적 현혹을 주기위한 유리공간으로 잡았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하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영화는 바우러리 킹을, 하이테이블을, 심지어 윈스턴까지 모두 찌질이로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하이테이블은 꼬깃꼬깃 땀에 젖은 쪽지를 건내는 저질 협상가로, 바우러리 킹은 7일간 비둘기 모이만 주는 무대책가로, 윈스턴을 탐욕스런 배신자로 바꿔버린다.

물론 윈스턴의 캐릭터 변화는 어딘가 미심적인 부분이 있다. 1, 2 편을 내리 존윅을 위해 안으로 굽었던 팔이 갑자기 '나는 역관절이었다!!' 라며 밖으로 내리꺾이는 장면은 영화를 처음 본 사람도 갸우뚱 할 만한 처사다. 그리고 윈스턴은 존윅이 방탄수트를 입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몸을 딱콩딱콩 쏴서 옥상에서 떨어뜨린다. 떨어진 곳이 매우 높기는 하나, 그렇다고 꼭 확실히 죽이려는 처사는 아니다. '바바예가...'라는 마지막 대사도 왠지 놀랐다기 보다는, 그럴줄 알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우리가 2편 마지막에 느낀 그 간지나는 인사처럼.

'윈스턴.'
'조나단.'


그러나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일지도 모르고, 윈스턴은 말을 아낀다. 그와중 영화는 2편에 집착한다는 것을 인정하듯, 익숙한 곳으로 나를 인도한다. 돌고 돌아 2편 하이라이트 직전으로 돌아온다. 아직 남은 액션이 남았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내 손목시계는 이미 러닝타임에 닿았다. 아마 다음 영화가 하이라이트일 것이라는 감독의 의식적인 설치일지도 모른다. (3편에서 마무리 짓는다는 낡은 정보만으로 영화를 본 내 탓도 크다.) 어쨋든 영화는 끝나가고, 너덜너덜해진 나는 쇼핑 카트로 옮겨져, 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그리고 나서 이 폭풍같은 영화는 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끝낸다.


" Yes, I am really pissed off!! " (실제 대사와 다를수도 있습니다.)